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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14 00:24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글쓴이 : 성당지기
조회 : 257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독서 : 이사 7,1-9

복음 : 마태 11,20-24


먼저 독서와 복음을 읽어보세요.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시던 지역은 갈릴래아 호수 주변 지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카파르나움에서는 중풍병자를 고쳐주시고(마르 2,1 이하) 로마 백인대장의 종도 고쳐주셨습니다(마태 8,5 이하). 또한 시몬 베드로의 장모도 치유해주셨고(마태 8,14-15),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다시 살아나게 해주셨습니다(마르 5,2 이하).


그리고 그러한 예수님의 기적을 목격한 갈릴래아 사람들은 환호하고 감탄하며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병든 자를 치유하고 생명을 건지신 주님의 기적을 그저 호기심과 놀라운 일 정도로만 바라볼 뿐이었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을 정치적으로 해방시켜 줄 능력 있는 이로 보고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갈릴래아 군중에게 예수님의 기적은 그저 세속적인 권능의 표상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을 향해 질책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기적의 참된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자기들의 세속적인 이해관계 안에서만 당신을 바라보고 따르는 잘못된 모습을 질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구세주로 고백하며 세례성사를 받은 신앙인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매일 미사 안에서 주님, 제가 부족하지만 당신을 믿습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 그러면 제 영혼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가끔은 직접 그분을 뵙기를 바라는 기적이 나에게도 이뤄지기를 소망하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라 무엇인가 간절함이 있을 때는, 그러니까 가족 중의 누군가 아프거나, 살아가는 것이 버겁고 힘들 때는 더욱더 애절하게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구세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에 나오는 갈릴래아 사람들과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며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 지금의 우리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세례성사를 받으면서 감격하고 기뻐하면서, 그리고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행복해하면서 성당을 다닐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나의 신앙, 지금 우리의 신앙은 어떤 모습입니까? 기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신앙의 확신 안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신앙의 확신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기보다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말씀을 듣고, 미사에서 성체를 모시기는 하지만 그저 무덤덤하고 하느님 말씀을 외면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날수록 오랫동안 그저 무덤덤한 모습으로 예수님 그분을 따라다닌것에 불과한 그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요.


만일 우리들의 신앙생활 모습이 그러하다면 결국 나 역시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또 다른 카파르나움, 코라진, 벳사이다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 있는 마을 이름이 아니라 바로 아무런 신앙의 열정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가리키는 말은 아닐런지요.


그리고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실천이 없는 신앙생활, 신앙의 확신도 없이 그저 무덤덤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지금의 나를 무섭게 질책하고 계신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하는 나는 복음서에 나오는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그 어떤 마을에서보다 더 많은 기적과 말씀을 나눠주셨음에도 참된 믿음의 생활을 하지 못했던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이 다름 아닌 지금의 나는 아닌지 돌아다봅시다.


예수님은 배우고 들으라고도 하셨지만, 무엇보다 가장 역점을 두신 것은 배우고 들은 그대로 실천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잘 묵상해봅시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듣기만 하고, 바라기만 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지금의 나,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들었고, 또한 이미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이나마 더 실천해 보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한 실천하는 신앙의 모습으로 거듭나도록 다짐하고, 또 실제로 실천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