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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08 23:52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글쓴이 : 성당지기
조회 : 163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21, 나해)

 

독서 : 1요한 5,14-21

복음 : 요한 3,22-30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을 만나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예언자로서 옛 약속과 새로운 약속을 중개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오늘 복음에서는 그 세례자 요한이 얼마나 순수하고 겸손한 존재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해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2,2)고 외치면서 회개의 세례를 베풉니다(마태 3,6;마르 1,4 참조). 그러자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약속된 구세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요한 1,19-28 참조). 그리고 세례자 요한을 따르던 제자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내용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당황해합니다. 그러자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8.30)고 말입니다.


그렇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해야 할 소명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겸손함의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 역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순수와 겸손의 삶을 드러내 보였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이와 같은 구원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구세주의 길을 닦는 앞선 이로서의 겸손한 모습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은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주님의 도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의 삶을 묵상하면서 신앙인의 삶이 바로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사제로 살아가고 있든지, 수도자로 살고 있든지, 평신도로서의 삶을 살고 있든지 우리는 주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단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평신도로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역할만 다를 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쓰다가 불편하면 칼로 깎아내고, 때로는 부러뜨리기도 하는 몽당연필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 몽당연필을 버리지 않고 볼펜에 끼워 하느님의 사랑 어린 손때를 묻혀 두고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그렇기에 사제로 살아가는 내가, 평신도로 살아가는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내가 존재함을, 하느님 그분이 계시기에 우리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신앙 여정에서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으로 인한 우리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자각할 때 우리는 보다 겸손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며, 신앙으로 인한 기쁨을 간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나를 비우지 못한다면,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을 나에게로 돌리려 한다면 우리는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하는 것이며, 내가 한 일을 몰라준다고 속병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하느님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좀 더 비우고, 하느님께 사랑과 영광을 되돌리면서 스스로 작아지려고 할 때 그만큼 신앙의 기쁨은 커지고,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은 충만해진다는 것을 알아가는 신앙생활이었으면 합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은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는 겸손의 신비를 체험하는 우리들의 신앙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